실습을 며칠 앞두고 이 글을 쓴다.
특성화고에 진학할 때부터 취업을 생각했으니, 3년짜리 취업 준비였던 셈이다. 그 시간을 한번은 정리해두고 싶었다. 잘한 것보다 후회한 것이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지금이 쓰기에 맞는 시점인 것 같다.
만들면서 배운 3년
입학하자마자 코로나가 와서 1학년은 대부분 원격 수업으로 흘러갔고, 본격적인 학교 생활은 2학기부터였다. 등교가 시작되고 교내 동아리 코드디씨에 들어갔는데, 지금 돌아보면 이 선택이 3년의 방향을 정했다. 당시 지각생 체크라는 교내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C언어로 그걸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사실상 첫 프로젝트였다. 지금 보면 별것 아닌 프로그램이지만, 내 문제를 코드로 풀 수 있다는 감각을 이때 처음 가졌다.
2020년 12월부터는 동아리 선배의 멘토링 아래 웹을 공부했다. 자율적으로 공부하되 선배가 방향만 잡아주는 방식이었고, 프론트엔드와 백엔드라는 단어를 이때 처음 들었다. 프론트엔드를 하기로 정하고 나서 한동안은 막막하기만 했다. 주변에 개발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혼자 시작했기 때문에 혼자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고, 그 습관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물어볼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검증하는 수밖에 없다. 느리지만, 그렇게 배운 것은 확실하게 남았다.
몇 달을 그렇게 구르고 나서 친구들과 한세톤이라는 교내 해커톤에 나갔다. 결과는 광탈이었다. 그런데 이 실패가 이후의 방향을 바꿨다. 떨어진 이유가 개발 실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프로덕트가 나오려면 개발만이 아니라 디자인, 기획, 마케팅까지 전부가 맞물려야 한다는 걸 처음 몸으로 알았다. 그래서 이론 공부를 줄이고, 실제로 만들고 운영하는 쪽으로 시간을 옮겼다. 한국코드페어에 낸 고잉, 개인 프로젝트 HMM, 코드디씨 홈페이지. 만들고, 배포하고, 사용자의 반응을 받으면서 배우는 것이 책상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그렇게 2년을 정리하니 프로젝트 4~5개와 자격증 3개(리눅스마스터, 네트워크관리사, 정보처리기능사)가 남았다. 이걸 노션에 보기 좋게 정리해서, 가고 싶은 회사 두 곳에 지원했다.
두 번의 면접
두 곳 모두 합격했다. 더 많은 면접을 경험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내가 자리를 오래 잡고 있을수록 학교의 다른 친구들에게 갈 기회가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충분히 좋다고 판단한 회사에 바로 가기로 하고, 두 곳만 골라 지원했다.
룩코는 서류 → 기술 인터뷰 → 컬쳐핏 순서의 채용 과정이었다. 에이클로젯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다. 면접은 준비한 대로 흘러갔다. HTML, CSS, JS, React 같은 프론트엔드 기본기도 나왔지만 네트워크와 OS 이야기가 더 주도적이었고, 면접 후기들을 보며 준비했던 범위 안이라 무난히 답했다. 고등학생의 첫 면접이라는 걸 아셨는지 면접관님이 분위기를 계속 풀어주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면접 후 컬쳐핏은 생략되고 바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회사에 붙은 거라 친구들이 축하해줬던 게 기억난다.
에이비제트(인포크)는 정반대의 면접이었다. 서류와 면접을 룩코보다 먼저 봤는데 결과가 늦게 나와서 솔직히 탈락한 줄 알았다. 회사가 코워킹 스페이스라 시설도 좋았고 면접관님들도 친절하셨는데, 면접 내용은 준비한 것과 전혀 달랐다. 압박 면접은 아니었지만 준비해간 테크 지식은 거의 나오지 않았고, 대신 내가 만든 프로젝트에 대한 질문이 끝까지 이어졌다. 이 부분은 어떻게 개발했는지, 지금 다시 한다면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분명 내가 만든 것들인데도,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답변이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개인 프로젝트 HMM의 서버-클라이언트 응답 과정을 보드에 그려보라는 질문이었다. 어떻게든 그려내긴 했지만, 올바른 답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면접장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분명했다. 외운 것을 확인하는 면접과, 내가 실제로 한 일의 깊이를 확인하는 면접은 다르다. 후자를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다.
선택
에이비제트도 컬쳐핏 없이 합격 통보가 학교로 전해졌고, 학교에서 두 회사 중 하나를 정해달라고 했다.
고민 끝에 에이비제트를 골랐다. 조건을 비교해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나를 가장 깊게 파고든 면접이, 나를 가장 성장시킬 환경일 거라고 판단했다.
취준 때보다 지금이 더 바빠서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첫 C 프로그램부터 보드판 앞에서 진땀 흘리던 면접까지, 돌아보면 잘한 선택보다 어쩌다 맞아떨어진 선택이 더 많았다. 다만 하나는 일관됐다. 막히면 만들었고, 만든 것이 다음 문을 열었다.
실습 몇 개월을 잘 지내고, 진짜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다. 같은 길을 준비하는 분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