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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P는 아직도 유효한가

스타트업에서 3년 가까이 MVP를 만들며 든 의문. AI 시대에 '최소'의 기준은 어디까지 올라왔나.

· 4분 읽기

스타트업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단어, MVP. 3년 가까이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MVP 단위의 개발을 수없이 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두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들이 정말 MVP인가? 그리고 에릭 리스의 『린 스타트업』은 지금도 유효한가? 특히 그 유명한 "MVP"는 아직도 의미가 있을까?

처음 입사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개발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AI 도구가 일상이 됐고, 사용자의 기대치도 높아졌다. 예전엔 "일단 대충이라도 빨리 만들어서 검증해보자"가 통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난 몇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요즘 MVP는 뭔가 다르다

2011년 당시 MVP 개념은 혁신적이었다. 최소한의 기능만으로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지 테스트해보자는 것. 애자일보다 워터폴이 더 익숙하던 시절엔 뭔가 하나 만드는 데도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으니, 충분히 설득력 있는 접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 사용자들이 첫날부터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기대한다. 너무 대충 만들어진 건 그냥 안 쓴다
  • 시장에 비슷한 서비스가 넘쳐나서 경쟁이 치열하다
  • AI 도구 덕분에 예전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괜찮은 퀄리티를 만들 수 있다

최근에 다른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지인이 B2C 도구를 전통적인 MVP 방식으로 출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소한의 디자인에 기본 기능만. 그런데 사용자들이 그냥 안 썼다고 한다. "나중에 개선했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관심을 잃은 후였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여기서 느낀 건,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잘되는 곳들은 단순한 MVP보다 MLP(Minimum Lovable Product) 에 가까운 걸 만든다. 기능은 제한적이어도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요소를 확실히 넣는다.

예를 들어 습관 추적 앱을 만든다면, 단순한 체크리스트와 차트만 주는 게 아니라 목표를 달성했을 때 격려해주는 AI 캐릭터를 넣는 식이다. 핵심 기능에 필수는 아니지만, 사용자가 계속 쓰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 말이다.

AI 덕분에 첫날부터 퀄리티가 올라갔다

입사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졌다. AI 도구가 작은 팀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엄청나게 넓혔다.

최근에 알게 된 솔로 창업자는 언어 학습 앱을 혼자 만들었다. 단순한 플래시카드 프로토타입이 아니라, 생성형 UI 도구로 인터페이스를 만들고 LLM으로 커리큘럼을 짜고 음성 인식까지 넣었다. 그것도 주말 몇 번 만에. 베타 테스터들이 이게 원맨쇼라는 걸 알고 놀랐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

  • 개발을 모르는 사람도 노코드 + AI로 꽤 괜찮은 앱을 만든다
  • 디자이너가 혼자 개발까지 해서 서비스를 출시한다
  • 개발자 한 명이 예전엔 팀이 필요했던 일을 해낸다

물론 아직 완벽하진 않다. 가끔 이상한 결과물이 나오고, 여전히 사람이 검토하고 다듬어야 한다. 하지만 예전의 "일단 대충이라도 만들어보자"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어느 정도 쓸 만한 걸 만들 수 있게 됐다는 건 분명하다.

빌드-측정-학습이 더 빨라졌다

린 스타트업의 핵심인 빌드-측정-학습 사이클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속도와 규모가 달라졌다.

빌드: AI가 코딩, 디자인, 콘텐츠 생성을 도와주니 훨씬 빠르게 여러 버전을 만들어볼 수 있다. 몇 달 걸리던 게 며칠로 줄었다.

측정: 사용자 행동 분석이나 피드백 수집도 AI가 도와주니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학습: 이 부분은 여전히 사람이 중요하다. AI가 패턴을 찾아주긴 하지만, 그게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하는 건 사람의 몫이다.

가장 흥미로운 건 이제 여러 가지를 동시에 테스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엔 A를 만들어 테스트하고, 안 되면 B를 만들고… 하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A, B, C를 동시에 만들어 비교할 수 있다.

고객과의 소통 방식도 바뀌었다

"고객과 대화하라"는 린 스타트업의 기본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방식이 달라졌다.

예전엔 고객 몇십 명과 인터뷰하는 게 고객 개발의 전부였다면, 지금은 AI를 통해 훨씬 많은 사용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직접 대화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보완재로는 정말 유용하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게 있다. AI와만 대화하다 보면 실제 사용자의 목소리를 놓칠 수 있다. AI는 항상 긍정적이고 지지적으로 답하지만, 실제 사용자들은 훨씬 냉정하고 직설적이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건 뭘까

AI로 뭐든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진짜 경쟁력은 뭘까. 요즘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

데이터와 학습: 사용자가 쓸 때마다 더 나아지는 시스템. 남들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고유한 데이터를 쌓는 것.

빠른 적응: 시장 변화나 사용자 피드백에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는가. 경쟁자가 우리 걸 베낄 때쯤 우리는 이미 몇 번 더 나아가 있는 것.

개인화: 각 사용자에게 맞춰진 경험. 오래 쓸수록 떠나기 어려워지는 그런 것.

이것들도 확실한 답은 아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니 지금의 생각이 몇 년 후에도 맞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 방향이 맞다고 본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

이 모든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것: AI가 아무리 좋아져도, 사용자가 정말 원하는 걸 만들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실제 사용자와의 대화: AI 시뮬레이션이 아무리 정교해도 진짜 사용자와 직접 이야기하는 건 대체할 수 없다.

명확한 비전: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우리가 왜 이걸 만드는가",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를 주고 싶은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 더 중요해진다.

정리하면서

3년 가까이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내린 결론은, 린 스타트업의 기본 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실행 방법은 많이 달라졌다.

전통적인 의미의 MVP가 죽었냐고 묻는다면,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달라졌다. "최소"의 기준이 높아졌다. 예전에 프리미엄이라 여겨지던 것들이 이제는 기본이 됐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니까. 확실한 건 계속 변할 거라는 것, 그리고 그 변화에 맞춰 우리도 계속 배우고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답이 명확하지 않은 시대다.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하고, 때로는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스타트업의 매력 아닐까.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다른 의견이나 경험이 있다면 언제든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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